2026. 3. 27. 10:22ㆍExhibit &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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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과 이윤복의 빛씨전
2026. 4. 1.(수) - 4. 6.(월)
인사아트센터 5층
여는마당_ 4월1일(물날) 늦은 4시
이야기 손님_전태삼(전태일 재단 이사 / 전태일 선생의 친동생)
송필경<(사) 전태일과 친구 이사 / ‘왜 전태일인가’ 저자)
박재동(시사만화가)
전시기획: 아르때숲(으뜸일꾼 정요섭)
참여작가: 김영순, 김재석, 김재홍, 김지소, 김태연, 남현진, 노경근, 박건재, 박성완, 박형필, 성효숙, 송주웅, 신현경, 유대수, 이경성, 이달비, 이운구, 이흥덕, 장경희, 전진경, 정영창, 정현수, 채한리, 천광호, 하성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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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복’을 아시나요?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이 영화는 매일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했던 11살 윤복의 일기이며, 온 국민을 울렸습니다.
‘전태일’은 아실 테지요?
제 몸을 불살라 노동인권을 부르짖은 태일의 일대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는 노동자의 인권에 무심했던 한국 사회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태일은 1948년, 윤복은 1952년에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둘은 지지리도 가난했습니다. 윤복이 거적때기를 이어 붙인 움막에서 몸이 아픈 아버지와 동생 셋과 살고 있을 때, 태일은 두 평도 안 되는 단칸셋방에서 재봉틀 한 대와 일곱 식구가 옹기옹기 살았지요.
윤복은 어린 나이에 껌팔이로 가족을 건사하면서 그 나날의 일들을 일기로 남겼고, 이를 어느 출판사가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으니,
그때가 윤복이 11살 때였습니다. 윤복의 책은 국내는 물론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출간돼 독자들을 울렸고, 이듬해에는 같은 제목으로 영화로도 나와서 그 시절 사람 중에 이 영화를 안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같은 시기, 윤복과 한 울타리 안의 배움터(덧글_1 참조)에 다녔던 태일이 윤복의 책과 영화를 모를 리가 없겠지요. (이는 태일의 동생 전태삼씨께도 확인한 사실입니다.) 11살 윤복이 머금은 빛씨가, 16살 태일의 가슴에 심어진 것입니다.(덧글_2 참조) 태일은 그 빛씨를 활활 꽃으로 피워 우리에게 전했습니다.
당신은 그 빛씨를 머금고 있나요? 당신에게 심어진 빛씨는 어떤 빛깔로 피워지고 있나요?
《전태일과 이윤복의 빛씨》展은 태일과 윤복 두 청ㆍ소년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간과 그로 인해 그들에게 서리게 된 맞섬의 용기와 이겨냄의 ‘빛씨’를 미술로써 톺아보는 전시이다. 오늘의 미술은 앎의 자랑과 결핍의 충족, 가진 자의 선민의식, 재화 가치를 고려한 투자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사에 빛나는 미술은 시대의 아픔을 비켜가지 않았고, 극복의 빛을 담아냈다.
‘평화의 힘’보다 ‘힘으로 유지되는 평화’를 믿는 야만의 시대, 자본이 非자본에게 가하는, 강대국이 약소국에게 가하는 전쟁과 같은 폭력 앞에 오늘의 미술은 그 빛씨를 길어 올려 저항해야 한다. 이는 곧 미술의 참 쓸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전태일과 이윤복을 ‘빛씨’로 규정하는 이번 전시는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둘은 권력을 거머쥔 자가 아니라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변방의 청ㆍ소년이었다. 그러나 움츠리고 있거나 체념하기보다 현실을 딛고 극복하려고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 둘이 세상을 향해 던진 외마디는 어둠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의 빛씨였다. 11살 윤복의 “가난은 죄인가요?”라는 물음은 내 죄 없이 겪어야 하는 빈곤의 구조적 폭력을 드러내는 고발이었고, 22살 태일의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은 소외된 노동의 존엄을 환기하는 선언이었다.
미술이 이 둘을 다룰 때 중요한 것은 그 외침이 오늘 우리에게도 상관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일이며, 나는 무엇의, 어떤 빛씨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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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_1)
전태일이 잠시 다녔던 ‘청옥고등공민학교’는 이윤복이 다니던 ‘명덕초등학교’ 안에 있었다.
(덧글_2)
예민한 사춘기였던 전태일이 아침마다 공장으로 향하는 길에 만났을 뽀얀 교복을 입은 여고생을 보는 마음이 어땠을까. ‘공장뺑이(당시 공장에 다니는 청소년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주정뱅이나 거름뱅이에게 붙이던 ’뱅이‘를 붙여 불렀다)였던 태일은 늘 책을 끼고 살았다. 책을 통해 이상은 저 멀리에 있고, 현실은 그러지 못했으니 저항의 불씨는 (윤복의 사연과 더불어) 여기에서 지펴진 거라 짐작된다.
글 | 정요섭 (전시기획자, 아르떼숲 으뜸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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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aejungart-maker.github.io/bitcci/
전태일과 이윤복의 빛씨
26.4.1(물날)~4.6(달날) | 기획: 아르떼숲
taejungart-maker.github.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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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공방 자리를 알아보느라 대구를 여러 차례 들리다가 일깨운 게 있어서 일 하나를 저지릅니다. 전태일이 살던 <전태일기념관>, 그의 사유를 깊게 했을 천주교 성직자 묘지가 있는 <성모당>,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책과 영화의 주인공 이윤복이 다녔던 <명덕초등학교>, 그 울타리 안 태일이 다녔던 옛<청옥고등공민학교>, 그로서는 가닿을 수 없었던, 빛보다 뽀얀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재잘거리던 옛<효성여고>, 이 모두가 몇 걸음 안에 이웃해 있는 거기에서 말간 하늘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 태일과 윤복을 떠올렸습니다.
태일은 1948년, 윤복은 1952~3년에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둘은 지지리도 가난했습니다. 윤복이 거적때기를 이어 붙인 움막에서 구실 못하는 아버지와 동생 셋과 살고 있을 때, 태일은 두 평도 안 되는 좁은 셋방에 재봉틀 한 대와 일곱 식구가 옹기옹기 살고 있었습니다. 윤복은 어린 나이에 껌팔이로 가족을 건사하면서 매일의 일상을 일기로 남겼고, 이를 어느 출판사가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으니 그때가 윤복이 11살 때였습니다. 윤복의 책은 온 국민을 울렸고, 이듬해에는 영화로도 나와서 그 시절 사람 중에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요.
윤복과 한 울타리 안의 배움터(전태일이 잠시 다녔던 ‘청옥고등공민학교’는 이윤복이 다니던 ‘명덕초등학교’ 안에 있었다)에 다니던 태일이 윤복의 책과 영화를 모를 리 없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는 태일의 동생 전태삼 선생께도 확인한 사실입니다. 윤복은 말합니다. “가난은 죄라고 하던데 나는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가난한가요?”, “선생님, 이렇게 배가 고픈데도 이 빵을 훔쳐 먹으면 죄가 되나요?” 11살 윤복의 사연으로 16살 태일의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저항의 싹이 트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 예민한 사춘기, 아침마다 공장으로 향하는 길에 만났을 뽀얀 교복을 입은 여고생을 보는 태일의 마음을 짐작해봅니다. ‘시대와의 불화’는 선 자리와 바라보는 곳의 거리가 멀수록 깊어지지요. ‘공장뺑이(당시 공장에 다니는 청소년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주정뱅이나 거름뱅이에게 붙이던 ’뱅이‘를 붙여 불렀다)였던 태일은 늘 책을 끼고 살았다고 합니다. 책을 통해 이상은 저 멀리에 있고, 현실은 그러지 못했으니 저항의 불씨는 여기에서 지펴진 거라 짐작됩니다,
태일은 가족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의 나이 17세가 되던 때이지요. 태일이 본 그곳의 근로 현실은 인간의 존엄 따위는 사치스러운 말이었고, ’노동‘이라는 말만 꺼내도 ’빨갱이‘로 내몰리고 있었습니다. 태일의 저항은 이곳 청계천에서 타오르기 시작했고, 대구에서의 시간은 그 불씨가 되었을 것입니다. “내게 대학생 친구 한 사람만 있어도...”라고 했던 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그의 나이 22살에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불에 탄 몸은 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태일을 각성시킨 윤복은 그로부터 이십 년이 흐른 어느 날, 세상과 불화를 겪으며 술로 지내다가 1990년 1월 25일, 그의 나이 38세가 되던 해에 별이 되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윤복은 태일에게 내 죄 없이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세상에 저항할 용기를, 태일은 윤복에게 (우리 모두에게) 겉멋만 부리고 있는 법의 단단한 껍데기를 깨어내는 용기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가난하여 비록 구석탱이에 살아도 ’빛의 씨‘가 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세상인심은 그 덕을 보려고만 할 뿐 내가 그 씨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땀 흘리지 않고도 빤지르르하게, 춥지 않고 맨도롱하게, 사람들이 막 부러워하게, 그렇게 똥폼잡는 씨가 될지언정 배고픈 가난은 싫어합니다. <전태일과 이윤복의 빛씨> 전시는 이 지점을 톺습니다. 우리는 어떤 빛을 머금은 씨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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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참고할 관련자료입니다>
# 전태일
1. 출생과 가족
출생: 1948년 8월 26일
출생지: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사망: 19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
아버지: 전상수, 어머니: 이소선 (훗날 ‘노동자의 어머니’라 불림)
형제: 5남매 중 장남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에서 일함.
2. 근로자가 되다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 취직
당시 근로환경: 하루 14~16시간 이상 노동
평균 연령 14~18세의 노동자들은 환기도 안 되는 곳에서 작업, 특히 폐결핵 환자가 많았음. 전태일은 스스로 근로기준법 책을 사서 읽고 밑줄을 긋기 시작함.
“법이 이런데 왜 우리는 보호받지 못하는가?”
3. 노동운동 시기
1968~1970년
‘바보회’ 조직 (근로조건 개선 모임)
노동청, 언론사 등에 진정서 제출,
정부기관은 외면했고, 사장들은 해고와 감시로 대응함.
4. 분신
19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그의 나이 22세로 분신함.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5. 그의 죽음 이후 바뀐 세상
전태일의 죽음은 한국 노동운동의 분기점이 됨.
1) 노동운동의 확산
1970년대 노조 운동의 씨앗이 됨
1980년대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짐
2) 노동법 현실화
근로기준법 문제 사회적 이슈화
3) 시민 의식 변화
대학생·종교계·지식인 연대 시작
“노동은 인간 존엄의 문제”라는 인식 확산
5. 어머니 이소선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이후 평생을 노동자들과 함께함.
6. 역사적 의미
전태일은 거대한 조직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변방의 봉제공장 직공이었을 뿐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 세 가지 질문을 남겼다.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경제성장은 모든 인간을 살리고 있는가?
근로는 존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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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복
1952년 생. 4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아버지의 술주정 등으로 가출함. 어린 나이에 껌팔이로 가족을 건사하면서 그 나날의 생활을 일기로 씀. 그의 일기가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발행되고 이듬해 같은 제목으로 영화가 나옴. 이 책과 영화로 온 국민이 슬픔 중에도 기어이 일어서는 용기를 얻게 됨. 이때가 윤복이 대구에 소재한 ‘명덕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그 학교 안에 전태일이 다니던 ‘청옥고등공민학교’가 있었음. 이 영화는 꽤 오랫동안 전국의 초중고가 단체관람을 했었음. -저 하늘에도 슬픔이-영화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음.
# 전태일과 이윤복_ 같은 동네, 다른 시간표
공간과 시간의 중첩 : 1960년대 대구 남산동 명덕국민학교. 한 소년은 낮의 교실에서 배고픔을 기록했고, 한 청년은 밤의 교실에서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배웠다. 명덕국민학교(현 명덕초) → 이윤복 재학 / 청옥고등공민학교(명덕국민학교 내) → 전태일 재학 / 1964년 이윤복의 일기가 책(저 하늘에도 슬픔이)으로, 1965년에는 영화로 나옴.
# 꼭 보시길 바라는 영화
전태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1995년 개봉, 감독 박광수
이윤복- 저 하늘에도 슬픔이 / 1965년 개봉, 감독 김수용
# 이 외 전태일은 여러 권의 평전으로, 이윤복은 만화를 포함한 여러 권의 책으로 발행됨.
# 전시기획_ 정요섭 010 8441 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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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요섭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share/p/18UxPJAaQ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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