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와배꼽전-여는 글
19980313. 유대수
안이한 '미술(행위)'관념의 세례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지금 이제까지 우리가 습관적으로 인정해온 '미술'에의 과도한 기대는 어느새 배보다 배꼽이 커져버린, 배부른 돼지를 키워가며 그야말로 습관적으로 미술을 대하게 함으로써 정작 있는 그대로 대면해야 할 '미술적' 안착점을 잃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배와 배꼽전의 기획에 대한 동기부여는 바로 습관적이지 않은, 습관적일 수 없는 미술적 안착점으로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의 미술가들이 겪는 현실과 이상, 구체성과 추상성의 괴리 등등의 작업실체로 돌아오면 우선 짚어보게 되는 것이 그 작가를 둘러싼 여러가지 현실인식의 조건일 것이다.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 라든지 '미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따위의 질문들이 닥칠 때 바로 그 답변자에게 적용되는 사회,정치적 인식이나 경제성, 생활 공간의 문화척도 같은 것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심각한 것이다. 우선은 그러한 요구조건들의 가감없는 드러냄으로부터 자신의 '미술'작업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배와 배꼽이라는, 얼핏 광범위하고 감각적으로 보이는 전시 주제에 대한 접근방식은 작가의 이해도에 따라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실상과 허상의 관계 또는 더 나아가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함축하여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볼 때 미술의 근원적 지향과 원칙에 대한 물음이라든가 일방적으로 유통되어지는 미술 제도, 미술 형식의 적절함 또는 부당함에 대한 논의가 우선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적절한 논리적 실체의 인식이나 삶의 원초적 뿌리에 근거한 진실성에 반하여 그럴듯하게 과대포장된 관념과 허상의 거품을 걷어내는 미술적 실천방식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 삶의 또 다른 한 축인 문화의 요체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정해진 하나의 답을 가지고 있다거나 무엇인가를 주창하여 이루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미술은 변해 왔지만 변하지 않았다-반대로 말해도 상관없다. 미술은 이미 무거웠으나 또한 가볍기 이를데 없다. 미술은 요구하지도 요구받지도 않는다.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쌓인 숱한 질문과 대답들이 마침내 허망해 진다고 해도 미술은 그저 여기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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