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16. 임금이 사랑한 부채 보러 오세요

2025. 3. 11. 10:13Exhibit & Column

20150316-소리전당 칼럼(유대수).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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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바람, 풍류도시 전주에 이는 문화 신바람

 

부채의 영어 표현인 ‘Fan'은 팬레터, 팬클럽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을 열렬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함께 사용되는데, 그 어원이 고대 이집트 시녀들이 여왕을 위해 시원한 바람을 제공하는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인류 문명의 발달 속에서 찾아지는 부채의 역사는 매우 깊다. 기원전 2500년대, 옛 인도에서 승려들이 동물의 꼬리털을 활용하여 만든 날벌레를 쫓아내던 파리채와 같은 형태의 불자(佛子)라는 도구가 인더스 문명 유물에서 다수 발견되어 이를 부채의 원형으로 파악한다고 한다. 또한 기원전 2000년대 소아시아 지역 최초의 통일국가인 히타이트(Hittites)왕국의 부조(浮彫)들에 부채가 등장하고, 기원전 1500년대 고대이집트 신왕국시대 벽화에 긴 자루로 된 종려나무잎 부채를 들고 왕을 수행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동양에서 부채의 기원은 중국 요순(虞舜) 시대로 올라간다. 중국 진()나라의 학자 최표(崔豹)가 남긴 󰡔고금주(古今注)󰡕에 의하면, 순임금이 즉위한 뒤 널리 현인을 구하여 문견을 넓히고자 오명선(五明扇)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으로는 고구려시대 안악3호분 벽화에 깃털부채 그림이 등장하고, 삼국사기-견훤전(甄喧傳)918년 고려 태조가 즉위하자 견훤(甄喧)이 하례품으로 공작선(孔雀扇)을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접선(摺扇), 즉 우리의 합죽선과 같이 종이를 발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부채의 경우, 세계 최초로 고려시대에 발명하여 중국과 일본 등에 전파되었다 하니 우리의 부채문화야말로 참으로 자랑스럽고 소중하기 짝이 없다 할 것이다.

 

"여름 생색은 부채요, 겨울 생색에는 달력이라"는 속담이 있다. 예로부터 더위가 시작되는 단오(端午)에는 으레 부채를 선물하는 것이 주요한 풍습이었다. 전주시민의 날이자 전주난장이 펼쳐지던 때도 단오인 것을 생각하면 전주는 부채와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이 있는 셈이다. 또한 조선시대 옛 전라감영터에 자리했다는 선자청(扇子廳)에서 제작된 전주부채는 단오에 임금에게 진상되는 명품으로 인정받아온 터다.

 

전주에서 바람을 다스리고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곧고 단단한 대나무가 많았고, 질 좋은 한지가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전주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과 장인 정신이 결합하였으니 전주 사람들의 마음에서 발원하여 대나무 살과 전주 한지의 날개를 타고 뻗어나가는 바람의 기세가 남달랐을 것이다.

 

전국적으로도 전통 기술을 보유하고 부채를 제작하는 문화재급 장인의 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 중에서도 몇몇의 부채 수집가를 제외하면, 우리 전통부채의 명맥을 오롯이 이어가는 6명의 선자장과 8명의 부채장인이 모두 대를 이어 전주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가히 전주를 부채의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세계문화유산인 판소리를 들을라치면 명창-소리꾼의 유일한 소품으로 어김없이 등장하는, 바로 그 부채의 역사와 예술성과 현대적 변용이 가득한 곳. 부채 한 자루에서도 풍류를 말하고, 풍류를 제대로 즐길 줄 알았던 곳이 곧 전주였다.

 

요새는 누가 누가 부채를 부치간디요? 모다 성질들이 모질고 급해서 빠르고 자극적이어야 허닝게 이까짓 부채 바람 가지고는 양이 안 차지요. 허나 사람 몸이고, 성질이고, 세상사는 일이고 간에 자연을 거슬러서는 못쓰는 법이지요. 서로 기운을 달래고 북돋우고 어우러짐서, 다스리기도 하고 이겨내기도 하는 것이 순리 조화지요. 안 그러면 어디가 상()해도 상합니다.”

 

소설 <혼불>로 유명한 최명희의 둥그런 바람이라는 수필 한 대목이다. 요즘이야 선풍기, 에어콘 등 현대문명에 밀려 부채의 소용가치는 많이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도시 한복판에 부채 한 자루 들고 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을 자아내는 용도 이외에 햇빛을 가리거나 음미할만한 경구와 시, 그림 등을 담아 항상 지니고 다니며, 부채살을 제외한 선면화(扇面畵)로 산수, 화조 등을 표현하고 표구하여 실내를 장식하기도 한다. 최첨단 기술문명의 편리함이 우리 삶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아날로그한 문화적 생활의 여유를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을 도외시할 수 없는 게 또한 현대인의 생활상이다. 실용성과 장식성, 화려한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우리 부채, 전주부채의 은근한 멋과 풍류를 기꺼이 즐겨보자. 전주는 슬로우시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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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수/홍익대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전북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7차례의 개인전과 70여 차례 단체/그룹전을 치렀으며 지역문화정책 관련 다양한 기획 및 연구사업에 참여했다. 현재 ()문화연구창 대표, 전주부채문화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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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6 소리전당 소식지-전주부채문화관 소개글

임금이 사랑한 부채 보러 오세요. ‘전주부채문화관’

 

연간 7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전주의 통로라 할 수 있는 전주역 광장에는 합죽선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전주를 찾는 이들에게 첫 인사를 한다. 이렇듯 부채는 천년을 이어온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고유 브랜드이자 전통 문화의 대표적 상징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옛 속담에 ‘단오선물은 부채요, 동지선물은 책력(달력)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부채는 과거부터 여름을 나는 필수품으로 함께 해 왔다.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영에 부채를 제작하던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임금님에게 진상을 했을 정도로 전주부채는 그 빼어남을 인정받았다.

 

전주부채문화관은 선자청(扇子廳)이 있던 전주와 전주부채의 역사적 가치를 밝혀 부채 장인들의 예술혼을 재조명하는 곳으로 경기전, 최명희문학관, 교동아트센터 등 전주의 역사, 문화, 예술이 밀집된 한옥마을 중앙에 위치해 있다.

 

2011년 10월 개관한 이후 현재까지 전주부채예술제·기획초대전·단오특별전 등 다양한 전시와, 지역문화예술교육, 언제든지 상설체험을 할 수 있는 나만의 부채그리기·방구부채와 쥘부채 등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부채장인 및 지역 예술가와의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전주부채와 지역문화의 소통의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전주부채문화관은 전주의 질 좋은 한지와 전주사람들의 예술적 감각과 장인정신이 담겨 있는 유물부채가 상설로 80여점 전시가 되어 있어 전주부채의 역사적 가치와 미적 우수성을 알리는 곳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전주부채의 아름다움을 지역민에게 소개하기 위해 최북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6인 부채전'(장소 : 무주군 최북미술관 기획전시실. 전시기간 : 3월 6일~4월 30일)을 진행하여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전주부채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주부채문화관에 오셔서 부채만들기 체험과 더불어 기획전시와 유물전시를 관람하기를 적극 권장하고 싶다.

 

전주시 완산구 경기전길 93(중앙초등학교 뒤, 최명희문학관 옆)

홈페이지 http://jeonjufan.kr

※ 매주 월요일 휴관. 일부 체험 프로그램은 별도의 체험비가 있습니다.

문의> 231-17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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