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보는 지용출/유대수 2인전 “樹, 浮遊”
김회경 / 문화공간 ‘紙談’ 기획실장 <문화예술현장 「품」, 2006. 09>
요즘은 단골 술집인 ‘새벽강’에나 가야 유대수를 만날 수 있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 몸을 건들대는데도 이상하게 눈빛은 평소보다 더 날카로워져 있다. 껄끄러운 일에 총대도 시원하게 잘 매고, 잠깐 잠깐 무대연출도 하며, 소규모이긴 하지만 영화제에도 손을 댔던가?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작가보다는 ‘문화인’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그다.
몇 년 전 눈이 펄펄 내리던 날, 지용출의 금구 싸리재 작업실에서 석탄난로를 피워놓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는 기억을 못 하지만, 운동권 출신 특유의 ‘골방 냄새’가 여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투사적인 이미지는 아니지만, 삶에서 ‘고집’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목판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만도 그렇다. 그는 그때에도 나무에 천착해 있었다.
여기까지가 두 사람에 대한 엉성한 나의 단상이다. 순진하고 이상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예술가에게는 ‘예술가적 삶’이 있다, 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작품이 작가의 삶을 표상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에 나는 좀 민감한 편이다. 지-유, 두 사람 모두 적당히 마주치며 사는 나로서, 이 짧은 단상이나마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로 써 먹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지-유, 두 사람이 5월 11일부터 31일까지 문화공간 ‘지담’에서 기획초대전을 열었다. 왜 둘이 열었느냐, 별 큰 의미는 없고 그냥 둘이 친해서다. 싸리재와 전주를 배회하는 두 남자, 둘의 작품은 길 위에서 길을 찾는 이야기다.
지용출作, 樹-3, 70×25cm, 2006
樹-나무.
지용출은 여전히 변치 않는 담백한 칼맛을 보여주고 있다. 먼 거리에서 응시하듯 바라본 거목들, 그 거구가 화폭 가득 들어차 있는데 드러내 뽐낼 것도 없고, 굳이 숨길 것도 없다는 투 같다. 꼭 젊은 날의 무성한 욕망을 다 떨쳐낸 듯 관조적이다. 모노톤의 절제된 색감이나 목판의 결을 그대로 살린 뒷배경에서 정통 목판화의 전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지용출은 나무(목판)에 나무를 새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변했으니, 피망이나 파프리카도 좀 볶아 먹을 법 한데, 그는 여태 고추장에 고추만 찍어먹는다.
물론, 고추장에 꽈리고추도 찍어먹긴 하나보다. 가끔 마늘이나 곤충도 새기곤 하는데,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것 같다.(그렇게 해석할 만한 몇 가지 정황을 알고 있음. 지면이 짧아 생략하기로 함) 그는 확실히 나무에 나무를 파고, 고추장에 고추장 찍어먹는 걸 최고로 좋아한다.
내 보기에 지용출은 변화가 더딘 사람이다. 쌍팔년도 식의 진지한 농담을 하고, 저항미술/민중미술의 기수였던 정통 목판화를 하며, 전주에 정착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리기 시작한 나무를 지금까지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변해 가는 세상이어서 눈알이 소용돌이치는데, 변화를 즐기지 않는 지용출은, 고집스레 나무만 파는 그의 작업은, 요즘 세상에 충분한 미덕이다. 다 좋은데,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가끔 사람을 나무 보듯 물끄러미 쳐다본다는 것. 일종의 직업병이려나?
유대수作, 浮遊-이동하기, 38×27cm, 디지털프린트, 2006
浮遊-부유.
판화가 유대수는 판화가 아닌, 디지털 카메라로 실험을 했다. 사람들도 깜짝 놀랐고, 나는 ‘지담’의 기획실장으로서 ‘지담’이 마루타냐고 따졌지만 그는 삐죽삐죽 웃기만 했다. 목판이나 디지털이나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디지털은 델리트 키 하나 달랑 누르면 그뿐이지만, 목판은 버리면 다 돈이다. 지용출이 그를 “거저 먹냐?” 식으로 좀 얄밉게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그런데 노출과 셔터스피드를 ‘장악’하지 않고서는 저런 이미지를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나 보다. 훔-, 혹시 어찌 어찌 얻게 된 ‘유레카’는 아닐까? 아니다-. 유대수가 밤마다 카메라 하나 들고 전주 시내를 부유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짜르르 했었다. 목격했다는 사람도 많다.
사실 나는 그의 실험을 반기는 쪽이다. 무엇보다 그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끊임없이 담금질해 가고 있다는 걸 알겠기에 그렇다. 짓뭉개지고 왜곡된 사진 속에는 치열한 현실을 살면서도 정처 없이 떠도는 현대인들의 소외와 고독이 있다. 단골 술집 ‘새벽강’에서 비트적거리며 걷던 그가 정처 없이 부유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언제 그렇게 마음을 얹어놓았던 걸까. 나는 그것은 사람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이었을 거라고, 멋대로 해석해 버렸다. 처음엔 모르긴 몰라도 술 한 잔 하고 찍은 사진이 아닐까, 의혹을 품었던 게 사실이지만, 사람에 대한 연민이 없다면, 마음이 뜨겁지 않다면 총대 매는 짓이나 낯선 매체를 들고 거리를 부유할 생각 따위는 안 했을 것이다.
* 리뷰는 대부분 그렇게 쓰길래 두 분께 반말을 좀 했다. ‘시적 허용’이란 것도 있으니, 용서를 바란다.
*전시 / 20060511- 문화공간 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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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 지담 기획초대展
“樹, 浮遊” _지용출ㆍ유대수 판화 2인展
2006 05 11 _ 05 31 문화공간 지담
opening : 2006 05 11 pm 6:00
화려한 축제의 계절 5월을 맞아 삶의 풍경을 소박하고 재치 있게 그려내는 판화가 지용출과 유대수의 만남, 2인 판화전이 11일(목)부터 21일간 문화공간 지담에서 열린다. 정통 목판화의 담백함과 디지털 사진의 화려함이 어우러질 이번 전시는 전주에 정착하여 판화를 처음 선보이기 시작하던 시기에 가졌던 2인전 이후 10여 년 만의 두 번째 만남이다.
樹, 나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기대고 싶은 든든한 기둥이자,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말없이 하늘과 땅을 지켜 온 자연의 상징이다. 목판화의 담백한 감칠맛을 바탕으로 일상의 풍경과 사물을 넉넉한 화면구성을 통해 표현해 왔던 지용출의 근작은 항교의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인간 세상의 풍파를 말없이 지켜 온 오래된 거목들의 듬직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곰소 갯벌에서 여린 풀잎과 꽃, 전주의 역사를 담아낸 현대판 지도그림까지, 다양한 소재를 찾아 꾸준한 목판화작업을 지속해 온 지용출은 동양적 여백의 미를 한껏 살리는 흑백의 단순하고 강렬한 대비로, 현대사회의 분주한 일상 바깥으로 밀려난 자연의 여유로운 미감을 풍성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浮遊, 판화가로 시작하여 지금은 현직 큐레이터로, 각종 전시연출과 기획 등의 영역에서 더 많은 활동을 보이고 있는 유대수는, 이전의 정통 목판화 작업을 벗어나 디지털 사진을 이용한 도시적 풍경을 선보인다. 회화적 붓질 느낌의 빛줄기를 살려내고 있는 그의 사진은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또는 길을 걸으며 포착된 영상을 보여준다. 작품은, 그 안에 담긴 형태가 중요하기보다는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즉, 행위의 태도가 재현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떠돌아 흐른다는 뜻의 ‘부유浮遊’를 제목으로 단 그의 작품들은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풍경을 흔들리는 노출과 속도감 있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무한경쟁과 속도에 떠밀려 무감각하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도시민의 정처 없는 현실과 소외를 드러낸다.
■ 작가약력 ; 지용출
추계예술대학교 미술학부 판화과 졸업
전북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재학
1997~2004 개인전 8회 및 그룹전 50여 회 참가
2001 전북 청년미술상 수상
현재:전북민족미술인협회 대표, 전북판화가협회 회원
연락처:011-394-1878 jyungcul@hanmail.net
■ 작가약력 ; 유대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 졸업
전북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 석사과정 재학
1996~2003 개인전 5회 및 그룹전 80여 회 참가
현재:전북민족미술인협회, 전북판화가협회, 작가포럼 회원
전북민예총 정책/편집위원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기획자
연락처:018-614-1719 unani@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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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화려한 디지털 사진과 담백한 목판화의 만남
판화가 지용출·유대수 2인전 31일까지 문화공간 지담
도휘정(hjcastle@jjan.co.kr) 입력 : 06.05.11 19:51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판화가 찍어내는 세상은 상대적으로 환하다’
판화가 찍어내는 세상은 판화가의 노력과 비례한다. 전주에 정착해 판화를 처음 선보이기 시작하던 시기에 가졌던 2인전 이후 10여년 만의 만남이다.
판화가 지용출 유대수 2인전 ‘樹(수), 浮遊(부유)’가 31일까지 전주 예원빌딩 지하 문하공간 지담에서 열리고 있다.
문화공간 지담이 오래전부터 공들여 섭외한 이번 전시는 지역에 판화라는 낯선 장르를 일궈온 이들의 만남이라 더욱 반갑다. 담백한 칼맛을 보여주는 지씨의 정통 목판화는 여전하지만, 유씨는 정통 목판화에서 벗어나 디지털 사진 작업을 했다.
넉넉한 화면 안에 들꽃과 들풀로 이름없는 민중의 삶을 주목하거나 전주의 역사를 지도로 담아온 지씨는 수백년 세월 동안 하늘과 땅을 지켜온 자연의 상징 고목으로 시선을 돌렸다. 향교의 은행나무 등 고목의 자연스러운 미감을 담백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 현대사회의 분주한 일상 밖으로 밀려난 자연의 여유로움을 전한다.
판화가로 시작해 지금은 각종 전시연출과 기획으로 더 바쁜 유씨는 그의 넓어진 활동 영역을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를 보여준다. 떠돌아 흐른다는 뜻의 ‘부유’를 제목으로 단 그의 사진들은 도시적 풍경을 흔들리는 노출과 속도감 있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잡아내 스쳐 지나가는 듯한 일상을 나타내고 있다.
속도에 떠밀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거리감을 두고있는 시선은 현대사회를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도시민의 정처 없는 현실이다.
흑과 백의 대비, 흑백과 칼라의 대비, 자연과 현대사회의 대비…. 수많은 대비가 눈길을 끄는 이번 전시는 같은 곳에서 출발해 다른 곳을 향해 가는 두 작가를 맞대어 보는 것이 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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