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1. 전주윤슬 4, 6월호
<전주윤슬 4월호>
전주가 보이는 이 한 장의 그림 - 동창(東暢) 이경훈(李景薰)의 ‘다가공원에서 바라본 풍경’
유대수/판화가, (사)문화연구창 대표
<동창 이경훈(1921~1987)作, 다가공원에서 바라본 풍경, 1960, 개인 소장>
예부터 풍부한 서화 전통으로 자타 공인 예향의 도시라 불리는 전주에는 근현대 미술의 역사를 열어간 인물들이 많다. 그중 전북 근대화단의 1세대로 꼽는 이순재(李舜宰), 박병수(朴炳洙), 김영창(金永昌)에 뒤이어 동경제국미술학교에서 신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온 동창(東暢) 이경훈(李景薰, 전북 남원生, 1921~1987)은 이미 고보시절 전국학생미술전람회와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여 재능을 과시했고, 1943년 귀국한 뒤 전주에 정착하며 활발한 창작과 발표활동에 매진한다.
1947년 이리(익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개최하는 이경훈은 6.25전쟁중 종군화가로 참전하기도 하고, 작품이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지는 불운을 겪기도 하지만 1952년 전주에서 전국 문화예술인총연합회 전북지부 미술부를 조직하고 미술부장을 역임하기도 한다. 또한 1954년 신상회(新象會, 이경훈이 주축이 되고 권영술, 김용봉, 김현철, 김용구, 문윤모, 소병호, 이복수, 이병하, 천칠봉, 한소희, 박두수 등이 참여)를 결성하여, 전쟁으로 피폐하고 암울한 환경에서도 창작의 열기를 높이며 서울 화단의 흐름에 못지않게 지역의 풍요로운 미술적 역량을 다지는데 힘을 쏟는다.
이경훈의 그림은 주로 인상파적 화풍과 표현주의적 특징이 섞인 향토색 짙은 작품을 거쳐 종교적 의식과 결합하면서 구상적 사실주의를 고수하는 자연주의 화풍으로 자리 잡는다. 인문적 대상으로서 어떤 감정의 서사가 보이지 않는 정지된 풍경으로부터 화가의 심리적 기제를 반영한, 구체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풍경을 곧잘 표현해내는 이경훈의 이러한 자연주의적 감각은 1960년에 그려낸 <다가공원에서 바라본 풍경>에서 잘 드러나기도 한다. 전주를 살다 간 많은 예술인들의 작품 속에서 당시의 실제 도시 풍경을 만나보기란 쉽지 않다는 점에서도 이 그림은 의미가 크다.
1960년의 전주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그림은 다가공원 정상에서 남고산 쪽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가까이는 기와지붕들이 나지막이 깔리고 점차 멀어지면서 풍남문과 전동성당이 보인다. 그 사이, (아마도 관청이나 공장이었을) 빨간벽돌 건물이나 굴뚝들이 끼어들면서 무심할 듯한 화면에 색채의 변화를 주는 것과 함께 수평의 단조로움을 깨는 시선의 자유로운 흐름도 유도해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승암산 너머 연푸른색으로 길게 펼쳐진 산줄기가 완주 구이 방향에 있어야 할 모악산을 닮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보이지 않아야 할 커다란 산줄기가 널찍한 하늘을 양분하며, 마치 도시를 감싸는 병풍처럼 펼쳐진 이유는 무엇일까. 차분하게 가라앉은 정제된 색채로 구성된 사실적 풍경이되, 단지 보이는 부분과 각도만을 다루는 좁은 시야를 벗어나 공간의 경험이 광역으로 확산되는 화가만의 독특한 인지감각이 덧대어진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참조 및 인용; 동창 이경훈 20주기 유작전 기념 작품집, 2007, 신한갤러리.
[요약]
1960년의 전주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그림은 다가공원 정상에서 승암산 쪽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가까이는 기와지붕들이 나지막이 깔리고 점차 멀어지면서 풍남문과 전동성당이 보인다. 그 사이, 빨간벽돌 건물이나 굴뚝들이 끼어들면서 무심할 듯한 화면에 색채의 변화를 주는 것과 함께 수평의 단조로움을 깨는 시선의 자유로운 흐름도 유도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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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윤슬 6월호>
예향 전주의 화랑과 전시장 문화
유대수/판화가, (사)문화연구창 대표
전주 화랑의 역사는 도시 규모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무시할 수 없는 오랜 연륜과 분포를 보인다. 1920년대 이후 전통서화를 벗어난 신미술가들의 활동은 바로 작품의 전시라는 새로운 형식의 시도로 드러나는데, 동광미술연구소(1930년대 중반, 이순재ㆍ박병수ㆍ김영창 설립)를 중심으로 후진 양성과 창작 활동의 근거를 마련하고 학교 공간을 빌어 동광미술전람회를 개최(1945, 전주성심학교)했으며, 1947년에는 금융조합전북도연합회에서 동인그룹전을 열기도 하고, 유병희의 종군기록화 개인전(1951)이 전주공회당에서 열린 바 있다.
많은 전시들이 본격적인 사설 화랑공간이 태어나기 전 기존의 공공기관인 전주미국문화관이나 전라북도공보관 등을 활용하여 활동의 토대를 쌓아갔으며 또한 고사동의 일번지다방(1953~54쯤, 최초 시화전 개최), 아담다방 등 찻집 전시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도 했다.
1971년 백제화랑, 전북화랑이 전주 최초의 사설 전문화랑으로 문을 연 이후 월담미술관(1974, 백제화랑과 겸함)이 개관함으로써 이렇다 할 전시공간이 없어 다방과 기존 공공건물을 전전하던 미술 전시들이 제대로 된 상설전시장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는 당시 여타의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시도들이었으며 전북미술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풍성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80년대 들어서면 가히 화랑 전성시대라 할 만큼 전문성을 내세운 공간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1981년 전주우체국사거리 3층에 금하미술관(金河, ~1985, 하수정)이 본격적인 민간화랑의 시대를 연다. (1981 금하미술관 개관기념 기획전/제21회 Epoque전주기획전(문복철 약력), 1981 박민평초대전, 1982 유휴열개인전 등) 고서화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인 솔화랑과 코아백화점 화랑이 1984년 문을 열었고 현재는 A옥션을 겸하여 활동 중이다. 또한 민중미술이라는 새로운 미학을 주로 다루었던 온다라미술관(1987. 10~1992)이 등장하고, 민간 사업자의 후원과 서양화가 유휴열의 노력으로 얼화랑(1988. 12.~2005. 1.)이, 표구사로 출발했던 대성화랑이 같은 해에 연이어 개관했다. 1991년 개관한 우진문화공간은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통로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외에도 예루갤러리(1993. 3)와 정갤러리(1993. 4)를 비롯해 민촌아트센터(1994), 한마음갤러리(1996), 서신갤러리(1997. 10), 현대아트센터(1999), 리베라갤러리, 경원아트홀 등이 지역 화랑의 맥을 이어왔다. 서신갤러리는 전담 큐레이터를 도입한 첫 화랑이기도 하다.
이처럼 지역미술의 살림을 두텁게 이끌어 왔던 사설화랑의 열기가 대부분 2~3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관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나름의 역할과 소명을 자부하며 새롭게 화랑문화를 세우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된다. 병원 로비를 활용하여 작가 초대전을 이어가는 수갤러리, 카페를 겸하며 다양한 기획전을 펼치는 오스갤러리 등이 그것이다. 최근 전주한옥마을(교동아트미술관, 향교길68갤러리 등)을 비롯하여 갤러리누벨백, 서학동사진관, 서학아트스페이스 등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시내 곳곳의 카페들도 전시장 역할을 겸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전주에서 갤러리라는 이름을 내건 곳은 26개에 이른다. 이외 전북예술회관(1982. 2. 9) 전시장의 꾸준한 운영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장(2001. 9), 전북도립미술관(2004. 10) 또한 전주의 미술문화를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요약]
전주 화랑의 역사는 도시 규모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무시할 수 없는 오랜 연륜과 분포를 보인다. 1920년대 이후 전통서화를 벗어난 신미술가들의 활동은 바로 작품의 전시라는 새로운 형식의 시도로 드러난다. 성심학교에서의 동광미술전람회 개최(1945)를 시작으로, 다방, 공공기관의 활용에 이어 최초의 전문화랑이라 할 백제화랑(1971)의 개관, 그리고 전북도립미술관(2004)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시공간들이 전주의 미술문화를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1954년 신상미술회 창립전 리플릿 표지, ‘전주미국문화관’에서 개최되었다.>
<1975년 8월, 3인전 도록에 실린 백제화랑(월담미술관 자리) 앞 기념사진, 좌부터 유휴열, 하반영, 박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