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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30. 전라감영 환상, 전주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printstudio89 2025. 3. 8. 12:30

20140930-수요촛불 기고 2

전라감영 환상, 전주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유대수/지역문화정책연구소 (사)문화연구창 대표

 

 

전주는 온전한 도시다. 넉넉한 도시다. 여유로운 도시다. 전주는 오래 묵은 도시다. ‘전통문화’가 아니라 ‘문화전통’의 숨결이 은근하게 흐르는 도시다. 이토록 깊이 사귀어 오래도록 사랑하고 살아갈 도시 전주에서, 손때 묻은 우리의 역사가 점점 사라진다. 70여 년, 도시를 지켜낸 구도청사가 무너진다.

 

"눈앞에 있는 멀쩡한 문화유산을 부수고 가짜 문화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과연 정상적인가." 전주시민 열 명중 여섯 명이 외치는 소리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잃었고 또한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프다.

 

아주 먼 옛날의, 목조기와건축 여섯 채를 짓기 위해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살아온 근대 생활사가 파괴된다. 많이 아프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숙고의 결단이라 변명하지만, 10년을 지루하게(!) 논의해온 것이라 둘러대지만, 그야말로 일부 집단의 일부 의견 개진이었을 따름이지 않은가.

 

2005년 전라북도 신청사 이전을 기점으로 하면 9년, 2009년 전라감영복원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구성에서 보자면 4년여가 구도청사 부지 문제를 정리하기 위한 시간인 셈이다. 9년여의 시간 동안 전라북도와 전주시는 공간 활용과 주변 활성화를 위해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장애인단체 및 보수관변단체 입주시켜 월세만 꼬박꼬박 챙긴 게 전라북도다. 어떤 권리주장도 못하면서 스산하고 황폐한 거리, 상가, 건물을 방치하고 허송세월한 게 전주시다. 신청사 건립비로 전용된 국비 500억에 발목 잡혀, “전라감영 복원”은 시민 생활과 문화, 도시환경의 관점에서 벗어나 정치와 행정의 도리 없이 고정된 상수가 되고 말았다.

 

어떤 구도심 활성화 대안이 논의되고, 어떤 건축 활용 대안이 제시되었으며, 80년을 넘나드는 의회동과 본관동의 역사기록을 어떻게 수습했는가. 문자 그대로 ‘나몰라라’ 했음이 기정의 사실이다.

 

전라북도와 전주시는 그 긴 시간을, 투입되어야 할 예산을 떠맡지 않겠다고 서로 미루고 싸우는 핑퐁게임, 기싸움에 낭비했다. 추진위는, 전면복원이냐 부분복원이냐 하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상상과 자존심 대결로 핏대를 세웠을 뿐, 근대사 현장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사진과 도면과 이야기와 사건들의 어떤 기록 작업도 등한시했다.

 

지난 6.4지방선거 전후로 불거진 소위 ‘철거 찬반논쟁’을 보자. 도내 공중파 방송 3곳이 토론의 자리를 만들었다. 시민주권의 대리공간인 시의회는 정치행정의 입장과 시민-도시의 입장 사이에서 도대체 무얼 했는가. 주무관청인 전주시는 진행의 경과와 정확한 실사의 계획과 몇 년 뒤에 만나게 될 구도심의 미래 청사진에 관하여, 시민과 어떤 대화의 장을 만들고 어떤 합의와 토론의 자리를 제공했는가. 결과적으로, 전라북도와 전주시와 추진위는 정치적인 판단과 사적인 이데올로기의 장에서 한 발짝 물러서지 않고 넓고 깊은 시민의 공감대 형성 노력과는 무관하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좀 더 사실적 지표들이 확인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시민들은 전라감영복원사업을 500억 원 규모의 스펙터클로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이 아님을 밝혀야 한다. 논의된 바 없고 계획되지 않았다. 철거예산 19억을 제외하면 전라감영 건축예산은 54억이며 선화당을 포함한 여섯 채의 목조건축을 재현할 예정이다. 예정부지는 약 2천4백 평으로, 원주시에 위치한 강원감영(2천7백 평)보다 작다. 2년 남짓에 지어질 이 건축물 조합으로 과연 ‘호남수부의 위풍당당한 자존심을 되찾자’는 꿈이 이루어질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전라감영 일부 재현 이후, 그러니까 약 4년 뒤의 활용방안도 막연할 따름이다. 투입될 예산은 전부 시민이 부담해야 한다. 지금 당장 활용 가능한 근대생활사를 때려 부수고 얻을 수 있는 모습과 가치로는 형편없는 노릇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게 정말 ‘전주라는 도시’가 살 길이라는 뜻인가. 나머지 절반의 땅에 대한 어떤 대책도 없이 말이다.

 

한옥마을이 이루어낸 관광성과에 현혹되어, 물밀 듯 차오르는 관광-여행객을 전라감영으로 분산하겠다 큰소리친다. 한마디로 기대난망이다. 무엇으로 머물 것인가. 과연 ‘돈’이 될 것인가. 제발 인터넷 검색해서 원주 강원감영, 대구 경상감영, 공주 충청감영 등을 살펴보시라. 실제 주민 상권과 구도심 생활권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익은 어디로 가는가. 부동산개발 뿐이다.

 

단적으로 물어, 구도청사 철거의 이유와 정당성의 논거는 ‘선화당의 위치’ 이외에 없다. 구도청사 본관동이 선화당이 들어설 자리와 5m 간격 밖에 되지 않아서, 선화당을 지어봤자 가로막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단지 그것 때문에, 본관동이 반드시 철거되어야 할 주요 근거로 삼는 것은 폐쇄적인 억지에 다름아니다. 공존의 방향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번 부수면 되돌리지 못한다.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하기를 바란다. 그동안 너무 가까워서 못 느낀, 오래 기다려서 보기도 싫다 하겠지만, 되돌려 복원할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을 잃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는 급속한 사회의 변화와 함께 멸실·훼손되는 근·현대 서울 시민의 모습이 담긴 문화유산의 보전을 위해 시민의 참여를 요청하며, 가치를 찾아내고 공유하며 미래세대까지 문화유산을 전달하고자 하는 정책입안을 통해 관심을 받고 있다.

 

전주는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재고에 재고가 필요한 일이자 좀 더 투명하고 객관적인 사업의 지표들을 열어놓고 의견을 물어야 할 일이다. 전주는 온전한 도시이자 슬로우시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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